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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클래식음악이야기

장 필립 라모(Jean Philippe Rameau 1683-1764)

by 아타카_attacca 2022.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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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필립 라모는 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가였다. 그는 일찍부터 디종의 한 교회 오르간 주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음악 교육을 받았고 젊었을 때 여러 도시에서 건반악기 주자로 활동하고 작곡도 하였다. 그러나 40세가 될 때까지 작곡가로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론가로서 주목을 끌었다. 작곡가로서 라모의 위치가 확립된 것은 50세 이후에 쓴 작품들을 통해서였는데 그러한 계기는 라모가 1731년 프랑스의 대부호 라 뿌쁠리니에르를 만나면서 이루어졌다. 그는 그의 성에 관현악단을 유지하였고 오페라 공연과 음악회를 자주 열어 프랑스 제일의 음악적 환결을 제공하였다. 그의 성은 예술을 애호하는 귀족들과 문인,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의 집합 장소였고 많은 예술작품들이 그곳에서 파리 시민에게 소개되기 전에 초연되기도 하였다. 오페라를 공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적합한 대본을 얻게 된 라모가 쓴 첫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도 1733년에 그의 성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의 파리 공연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극찬과 혹평의 극단으로 나뉘었는데 이때 라모의 반대파들은 라모가 륄리의 전통을 벗어난 혁신 주의자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19년 후에 당시 수입 유행되던 이탈리아 오페라를 상대한 싸움에서 륄리를 계승한 프랑스 전통주의자로 평가받았다. 라모는 30여 개의 오페라뿐만 아니라 60여 곡의 건반 음악, 약간의 모테트와 세속 칸타타를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론가로서의 라모는 음악에 중요한 학술적 저술을 남겼다. 그의 이론은 화성이 모든 음악의 근본이라는 믿음에 근거하였다. 그는 화성의 보편적인 원리를 음향학의 법칙에 근거해 설명하였다. 라모가 규명한 음악적 지식은 동시대 작곡의 실제를 정리한 것이었고 그 이론은 후세 이론가들의 연구에 확실한 기초가 되었다. 그는 음들을 5도 쌓아 올려서 온음계를 유출하였다 배음열에서 장 3화음을 유도해 내었다. 그는 또한 화음을 3도씩 아래에서 위로 쌓음으로써 3화음, 7화음, 9화음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 한 화음의 화음 됨을 그 전위 형태와 함께 인식해야 한다는 것, 근음 진행이 화성 연결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 등을 확립하였다. 또한 그는 으뜸화음, 딸림화음, 버금딸림화음의 세 화음을 조성 중심으로 확립하였고 다른 화음들은 이 세 화음들과의 관련성으로 정체성이 확립되는 기능 화성법의 관념을 형성시켰다. 또한 이 관념에 의해 한 화음의 기능이 바뀔 때 새로운 조성으로 움직이는 소위 전조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정립하였다. 그가 자신의 이론들을 피력한 여러 저술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1722년에 출판된 <화성의 법칙>이다. 그러나 라모의 이러한 이론들도 당시에는 그의 작품들 못지않게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라모의 오페라들은 륄리가 바로크 초기에 완성한 프랑스 오페라 장르 서정적 비극의 구성을 따랐다. 서정적 비극은 주로 레치타티보로 극을 진행하였고 다양한 노래와 춤의 여흥이 막마다 들어가 있는 짜임새를 가지고 있었는데 륄리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장르는 점점 더 무대장치의 장대함과 장식적인 요소가 증가되면서 질적으로 떨어지는 구성을 보여주었다. 라모의 오페라에서 레치타티보는 좀 더 선율적에서 아리아와 대 대비가 없었고 거기에 반주가 곁들여져 감정적 효과가 가미되었으며 또한 합창과 춤이 극적 진행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오페라에 있어서 라모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오페라의 기악 부분, 즉 서곡과 춤 반주곡 그리고 무대의 사건을 묘사하는 관현악곡 등에 나타난다. 이러한 곡들에서 보여주는 라모의 묘사력은 선율 진행과 화성 처리 그리고 주제 전개 등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며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로 독창적이다. 그의 관현악 처리는 음악이 갖는 회화적인 특징을 부각한다. 이 모든 개성적 요소들은 화성 이론가로서의 라모가 작품에 뚜렷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라모는 첫 서정적 비극 <이폴리트와 아리시>에 이어 2년 후 새로운 장르인 오페라-발레 <멋진 인도인 1735>을 내놓았는데 거창한 규모의 발레와 장대한 장면의 연결이어서 극적 요소가 약하지만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네 개의 막은 독자적인 줄거리를 갖고 각 막은 터키, 페루, 페르시아, 미국 등 지구 상의 각 각 다른 장소를 무대로 삼아서 이국적인 장소와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하는 18세기 초 프랑스 청중에게 색다른 맛을 제공하였다. 1737년에 라모는 두 번째 서정적인 비극인 <카스토와 폴류>를 초연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라모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네 권의 모음직으로 출판된 라모의 클라브생 소품 65곡은 그가 이 악기에 얼마나 숙달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들은 섬세한 짜임새, 활달한 리듬, 우아한 세부처리 그리고 기교적 실험과 익살스러움으로 과거의 양식과 동시대의 양식 그리고 그 후의 발전을 예시하는 하나의 파노라마이다. 라모의 기악합주 음악으로 유일하게 출판된 것은 <연주회용 클라브생 작품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바이올린(또는 플루트)과 비올(또는 바이올린)을 위한 트리오 소나타 모음집이다. 여기서 건박악기가 단순한 반주 악기로 처리되지 않고 주제적 소재를 제시,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다른 악기들과 동등하게 취급된다. 그는 81세 생일을 맞기 며칠 전에 사망하였다. 그는 말년에 프랑스 궁정의 총애를 받고 작위도 받고 상당히 부유하게 되었지만 언제나 엄격하고 말이 없는 비사교적인 인물이었다. 라모는 그의 다양한 오페라 장르의 작품들로 바로크 말기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이론가로서의 공헌이 지대하다. 이론가로서 그는 음악을 "과학"으로 조명하면서 보편적인 화성적 법칙들을 자연적 원인에서 찾았고 그러한 이론적 법칙들을 철저히 그의 작품 속에서 적용하여 독창적이고 앞서가는 표현 양식을 개발하였다. 그의 이론적인 저술들은 자신의 음악은 물론 그 후 여러 세대에 걸쳐 적용되는 화성과 조성의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켰다.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남다른 생애를 보냈던 라모는 18세기에 가장 창조적이고 영향력 있는 프랑스 작곡가이자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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