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의 지배계급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렸다. 대부분의 백성은 겨우 생계만을 유지하는데 급급했으나, 지배계급들은 사치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궁정이나 장대한 오락물을 통해 그들의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려 했으므로 그들에게는 음악이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하나의 궁정이 오케스트라, 교회 합창대, 오페라 가수단 등을 소유하였는데 그 규모는 부의 크기에 비례했다. 바흐는 1717년 한 작은 독일 궁정에서 18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지휘하였으나 당시의 큰 궁정은 80명 여명을 상주시키기도 하였다. 궁정의 음악 감독은 연주회를 주관하기도 하였지만 오페라, 교회음악, 연회 음악 등 궁정 연주회에서 필요한 작품을 창작하였다. 이 과다한 업무 이외에도 고용된 음악 감독들은 젊은이들의 음악 교육과 음악 장서와 악기 관리의 책임도 있었다. 음악감독의 자리란 그 명예가 높고 자신이 작곡한 작품이 항상 연주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항상 고용주들의 의지에 따라 활동하는 봉사자였다. 교회도 음악을 필요로 하였다. 바로크 시대의 많은 교회가 예배를 이끄는 오르간과 합창단 이외에도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었다. 실상 당시에는 교회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유일한 장소였다. 대중을 위한 연주회도 적었고 궁정과도 거리가 먼 사람들이 음악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교회의 음악 감독도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야 했으며 교회 학교에서 소년 합창을 지도하여야 했다. 그들은 또한 교회의 정규적인 의무 이외에 결혼이나 장례 등의 행사에도 음악을 제공하여야 했다. 시당국도 교회, 대학, 귀빈 접대, 기념행사 등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음악가들을 고용하였다. 이러한 도시 악사들은 아마추어와 함께 음악 클럽이나 대학교 음악단체, 가정, 찻집, 술집 등에서 연주하기도 하였다. 18세기 전반의 작곡가로서 당시 최대의 명성을 누렸던 텔리만은 라이프치히,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같은 도시에서 대학생 동아리로 구성된 콜레기움 무지쿰을 지도하여 공개 연주회를 정규적으로 열었는데 그 연주회에서는 당시의 모든 종류의 음악이 연주되었고 종교 음악과 세속 음악이 구분 없이 편성되었다. 그는 또한 가정 연주회를 주선하고 식탁 음악, 아마추어를 위한 음악을 출판하여 음악의 대중화에도 노력한 사람이다. 어떤 바로크 음악가들은 오페라 극장을 위해 작품을 썼다. 베네치아에서는 다수의 오페라 극장이 있어서 새로운 오페라를 끊임없이 연주하였고 영국의 헨델도 1728년에는 자신의 오페라단을 설립하여 지휘자, 경영인, 흥행사 등의 여러 기능을 완수함으로써 최초로 자유 음악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바로크 시대에는 어떻게 음악가가 탄생하였을까? 종종 음악적 기능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수되었고 훌륭한 음악가가 음악가 집안의 혈통에서 나왔다. 교육은 도제 방식이 흔하였다. 또한 많은 경우 어린이들이 성당의 소년합창단에 입단하여 음악교육을 받았다. 비발디가 일생동안 일했던 베네치아의 피에타 오스페달레는 고아나 사생아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일종의 종교 기관이었다. 비발디는 그곳에서 지휘자, 작곡가, 교사, 음악감독으로 활약하였고 여기에서 교육된 젊은 음악인들이 그 도시의 성당이나 교회의 음악회에서 연주하였다. 음악가들은 직장을 얻기 위해 어려운 시럼을 치렀고 기부금을 내거나 전임자의 딸과 결혼해야 하는 조건도 예외적인 것이 아니었다. 작곡가들은 바로크 사회에서 필수적인 존재였다. 궁정을 위해 또한 교회나 상업적 오페라단을 위해 당시의 구체적인 필요성과 목적을 위해 작곡하였지만 그 작품들의 음악적 가치는 현대에서도 빛나는 것 들이었다.
18세기 전반의 음악 환경
18세기 전반은 여러 음악 양식이 뚜렷하게 병존한 시대이다. 그 시기에 바로크 양식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가벼운 짜임새의 새로운 로코코 양식이 유행하였고 또한 독일에서는 표현 양식이 성행하였다. 1730년 이후에는 이러한 고전적인 요소들이 그 세기의 후반에 나타날 경향을 뚜렷이 예시하였다. 18세기 전반의 작곡가들은 주로 어느 한 양식에 집착해 활동을 하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양식을 융합시켰다. 특히 바로크 말기 네 사람의 대가들, 즉 비발디, 라모, 바흐, 헨델은 바로크 시대의 모든 양식을 완숙한 경지로 끌어올리며 각자의 독특한 작곡 세계를 펼친 작곡가들이다. 이들은 유럽 예술 음악의 선직국이었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 각기 활동하였다. 모두 당시의 대위법적 양식과 화성법적 양식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면서 비발디는 협주곡 분야에 라모는 이론적인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공헌을 하였고 헨델은 오라토리오의 대가였다 이 세명의 작곡가와는 달리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던 바르는 바로크의 모든 대표적인 음악 장르를 그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이들은 서로의 접촉은 거의 없었으나 다른 작곡가들이 같은 시기에 있었던 새로운 경향(고전시대의 초기 양식들에 나타난)도 인식하고 있었으나 새로운 변혁을 시도하지 않고 각자의 고용 환경이 요구하는 대로 음악을 작곡하였다. 바로크 양식을 최고의 기술로 종합하고 있는 이들의 작품들은 동 시대인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도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 음악회의 주요 레퍼토리로 포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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