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의 대화법

가짜 아카시아 , 아까시나무

아타카_attacca 2022. 5. 29. 01:46
반응형

서양 역사의 식물을 위주가 되어 버린 것 같아, 한국의 식물 혹은 지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을 찾다 보니 5~6월에 꽃이 피는 아카시아 나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는 본명이 아니었다. 진짜 아카시아 나무는 열대성 지방에서 사는 키가 정말 큰 나무로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 같은 곳에서 자라며 흰색 꽃이 아닌 노란색 꽃을 피운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지낸 아카시아 나무, 아니 아까시나무의 이야기를 허예섭, 허두영 님이 지은 책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에서 찾아보았다.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진짜 아카시아 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까시나무의 학명은 로비니아 슈도 아카시아 (Robinia pseudoacacia L.)이다. 스페인의 로빈 대령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카시아와 비슷한 나무를 유럽으로 가져왔는데 스웨덴의 식물학자 리넨이 그의 이름을 따서 로비니아를 붙이고 종속명을 슈도(pseudo), 가짜라는 단어를 붙여 "가짜 아카시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풀이해보면 로빈 대령이 가져온 가짜 아카시아라는 의미이다. 진짜 아카시아 나무는 오스트레일리아나 아프리카 같은 열대 지방에서 주로 자라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아카시아'는 모두 아까시나무이다. 아카시아나 아까시 모두 콩과로 열대의 아카시아는 캥거루, 기린, 코끼리가, 온대의 아까시는 노루나 토끼가 좋아하는 먹이다. 우리나라에는 1891년 일본 사람이 북경에서 나무를 가져와 인천에 옮겨 심은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6.25 전쟁 이후 황폐해진 산과 들의 녹화작업을 위해 큰 역할을 하며 한반도에 널리 퍼졌다. 나무의 싹이 쉽게 트고 추위와 소금기에 잘 견디며 번식력이 좋아서 황폐해진 민둥산을 빠르게 재생시켰다. 거기다 2~3년만 지나면 땔감으로 베어 쓸 수 있고 화려한 꽃망울에서는 벌에게 달콤한 꿀을 제공하고 콩과의 열매는 동물들에게 귀한 양식이 되었다. 한때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아까시나무는 대체로 20~30년 왕성하게 자란 후 급격히 성장이 둔화하고 주변 나무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우라나라에서 자라는 아까시 나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아까시나무

초여름의 신선한 바람과 진하게 물들어 가는 연녹색 잎사귀와 달콤한 향과 화려한 꽃망울로 우리를 유혹하는 아까시나무를 열정의 집시 여인에 비유하여 쓰신 글이 너무나 멋지고 강렬하여 함께 옮겨본다.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가 만든 오페라 <카르멘>의 주인공은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집시 여인이다. 카르멘은 아까시 꽃을 물고 공장을 나서다 경비를 맡은 돈 호세에게 꽃을 던지고 깔깔거리며 지나간다. 순박한 군인 돈 호세는 집시 여인의 붉은 치맛자락과 하연 아까시 꽃 향기에 이끌려 걱정과 파면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5월이 되면 아까시 꽃은 집시 여인처럼 강력한 유혹의 눈짓을 보낸다.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우윳빛 꽃송이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집시 여인의 치렁거리는 붉은 치맛자락처럼 뭇 사내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산들바람처럼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향기를 따라가면 어느새 아까시 꽃 무리에 홀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며 그 꽃잎들이 깔아 놓은 하얀 카펫을 밝아보라. 동화의 세계에 등장하는 낭만의 주인공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집시 여인은 보드라운 가지를 꺾어 내밀며 사랑의 점을 쳐보라고 유혹한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안 한다. 사랑한다. 안 한다'를 되뇌며 아리따운 이파리를 하나씩 떼내다 보면 마지막 남은 한 잎은 '사랑한다'로 끝난다. 점술의 결과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아까시는 홀수 깃꼴겹잎 구조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로 마치게 마련이다.
아뿔싸! 고혹적인 집시 여인은 위험한 가시를 숨기고 있던가? 돈 호세도 바로 저 가시에 찔리지 않았던가? 상긋한 꽃 맛을 탐닉하면서 사랑의 운명을 점치던 어느 순간 갑자기 따끔한 고통에 깜짝 놀라 손가락을 살피면 카르멘의 치마처럼 애 붉은 핏방울을 보게 된다. 돈 호세처럼 한 걸은 물러서 집시 여인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때는 이미 늦었다."


글을 작성하며 어린 시절이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초등학교 중반까지 강원도 산골에서 자라 등교는 버스를 타고 갔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친구들과 걸어서 하교를 했다. 여름에 흐트러지게 피던 아카시아, 아니 아까시나무 꽃을 따먹으며 잎사귀로 사랑 점을 치면서 친구들과 희희낙락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걷던 그 길의 꽃냄새가 느껴진다. 산등성이에 있는 양봉 상자를 건드려 호되게 혼이 나서 도망치는 기억도 슬그머니 올라온다. 지금껏 잊고 있던 기억이 이렇게 되살아 나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참 예뻤던 추억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