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의 대화법

튤립의 또 다른 이름, 울금향(2)

아타카_attacca 2022. 6. 4.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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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의 역사를 찾아보다 알게 된, 튤립에 대한 우리나라 이야기가 잠깐 소개되어 옮겨보려 한다. 튤립의 한자 이름은 "울금향(鬱金響)"이라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울금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다. 튤립은 백합과 식물이고 울금은 생강과 식물이다. 카레의 노란색과 독특한 향을 내는 것이 바로 이 강황, 심황 혹은 울금이다. 인도 원산의 더운 지방 식물이기 때문에 국내에는 남부지방 극히 일부, 특히 전라남도에서 재배했고 조선시대에 이미 수요가 무척 높았다고 한다. 두 이름이 혼동하게 된 사연이 있었을까?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의 내용을 간추려 보았다.

한국의 자생 튤립, 까지 무릇(Tulipa edulid)

어떤 연유로 튤립을 울금향이라 불게 되었을까? 옛날 자료를 찾아보니 192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튤립을 울금향으로 불렀던 기록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한 예로 1958년 경향신문에서 '튤립'이라는 제목으로 '튤립은 영어로 Tulip 한자로는 울금향(鬱金香)이라고 쓰며'라고 소개하고 있다.(3월 29일). 그러던 것이 1990년대에 이르러 민족문학가들에 의해 울금향이란 명칭이 다시 발굴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튤립을 울금향이라고 한다. 중국의 튤립은 1593년에 이르러 네덜란드의 사업가가 가지고 들어온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말에 도입되었으나 정착기를 거쳐 20세기 초에 이르러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 튤립이 언제 전해졌는지 그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우리나라 자생 튤립 까치무릇 (사진출처 flichr)

우리나라에는 국내 자생종 튤립이 있다. 까치무릇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린다. 주로 제주도, 전남 지역을 위주로 중부 이남에 분포되어 있는데 산야에 숨어 살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은 아니다. 얼핏 꽃만 보아서는 요즘 볼 수 있는 튤립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크로커스를 닮은 흰색의 꽃이 귀엽고, 키 15~39센티미터의 그리 크지 않은 식물이다. 예부터 뿌리를 캐서 약재로 썼다고 한다. 허준 선생 말씀이 약재로 쓰일 때는 산자고라고 하고 민간에서는 꽃이 초롱같이 생겼다 해서 금등롱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러나 까치무릇은 야생종이고 튤립은 정원에 심기 위해 재배된 원예종을 일컫는 전 세계적인 공통 언어이니 까치무릇이 변해서 울금향이 된 것도 아닌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울금향, 넌 누구니?

울금에서 나는 강한 향을 울금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울금 혹은 울금향이 여러 번 등장한다. 아마도 울금으로 술을 만들었었나 보다. 술을 빚을 때 울금을 넣으면 복숭아 향이 나고 색이 노랗게 되어 진기한 술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특히 왕이 제를 지낼 때 울금향 술을 썼다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오는 거로 미루어 보아도 최고급 술이 었던 것 같다. 이 술을 울금술이라 하지 않고 "울창"이라고 했으며 실록의 주해를 보면 울창은 "울금향/ 울금의 뿌리를 넣어 만든 향기 나는 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내막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요즘 튤립을 울금향이라 다시 부르기 시작하면서 울금주라는 것 역시 튤립을 넣어 만든 술이 아닐까라는 오해도 비롯되고 있는 것 같다.

울금은 생강과 강황에 속하는 식물이다. 사진은 강황의 뿌리와 가루이다. (사진출처 flichr)

조선 세종대에 와서 <향약집성방>이라는 방대한 의약 책이 발간되었다. 이는 일종의 약용 식물도감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식물을 연구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료들이다. 당시 약용 식물들의 이름이 모두 한자나 혹은 한자의 음을 빌려서 쓴 이두로 표기되어있는 데다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 식물들을 찾아 나서고 싶어도 그게 쉽지가 않다. 후에 성종대에 승지 이경동이 상소하여 그림을 그려 넣자고 하였고 임금이 '그러하라'라고 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림을 그려 넣은 책이 발간되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 후 수백 년이 지난 2006년, 사진이 포함된 도감형 향약집성방이 새로 출판되었다. 성종 때 상소를 올린 것이 1479년의 일이 었으니까 꼭 527년 만에 어명이 실행된 것으로 봐야 할 까보다. 그런데 이 도감에 울금(강황, 심황), 까치무릇(산자고), 그리고 튤립(Tulip gesneriana L.)이 모두 수록되어있다. 튤립의 경우 꽃과 구근을 약으로 쓴다는 설명과 함께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튤립 사진이 실려있고 튤립의 꽃과 뿌리를 말린 약재의 사진도 들어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흔치는 않지만 튤립을 약으로 쓰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작가님은 여러 역사의 기록과 자료를 찾아보며 튤립이 울금향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정리해 보고자 했다. 조선 세종대 이전, 튤립이 들어오기 전부터 사용되었던 울금과 울금향(울금의 강한 향)에 대한 약효와 약용 기록이 남아 있던 것이 16세기 말 중국에서 정원용 튤립을 울금향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기록에 혼선이 빚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정리를 해보자면,
1. 중국의 영향으로 정원용 튤립의 한자 이름은 울금향이 맞지만 통상 알고 있는 생강과 식물 "울금"과는 관련이 없다.
2. 조선시대 이전부터 약용식물 기록에 남아있는 "울금향"은 울금의 뿌리로 사용된 것을 울금향으로 표기하여 혼선이 빚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3. 울금주(울창주)는 튤립으로 만든 술이 아니라 울금으로 만든 술이다.

열심히 정리해 보니 속 시원한 해답이 아닌 것 같아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튤립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서 내심 뿌듯하다. 그리고 울금주를 꼭 찾아 마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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