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의 대화법

생명의 나무, 사과나무

아타카_attacca 2022. 6. 5.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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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비틀즈의 레코드 회사인 애플 레코드와 전 세계가 애용하는 스티븐 잡스의 애플과의 법정 분쟁이나 뉴욕의 별명 빅애플(Big apple)까지 세계 원예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과는 아이작 뉴턴이 중력 이론을 공식화하는 데 힘을 보탰으며 많은 신화와 전속 속에서 주역을 맡았다. 사과에 관한 그리스 신화와 역사 이야기는 유럽 사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과수용이 아니더라도 정원이나 목장 주변에서 흔히 사과나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딸이 제일 좋아하고 잘 먹는 과일이 사과인데, 사과나무는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와있었을까?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과수용 사과나무 묘목이나 꽃사과 나무를 유통한다고 한다. 도서관 반납기일 마지막 날, 다시 한번 고정희 님의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에서 다룬 한국의 사과나무를 찾아 고전 분투하신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나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사과나무가 상상되지 않아서 찾아본 비슷한 느낌의 사과나무 (출처 flickr)

한국에서 사과의 흔적 찾기

사과는 한국에서도 가장 먼저 꼽는 과일이니까 사과나무도 흔하게 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게다가 사과나무는 본시 동쪽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사과나무를 귀히 여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일을 떠나 나무로써의 존재감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사과는 마트에 넘쳐나는데 사과나무는 없다. 물론 과수원에 가면 있지만 정원의 사과나무를 말하는 것이다. 왜 사과나무를 정원에 심지 않느냐고 동료에게 물었다. "사과나무가 못생겼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꽃사과를 심으세요"라고 했다. 꽃사과는 내가 생각하는 사과나무는 아니었다. 열매를 줄이고 꽃만을 보기 위해 개량을 거듭하여 기형이 된 슬픈 나무였다. 마치 스타를 만들기 위해 진하게 화장시켜 무대로 내보낸 어린아이와 같았다.
한국의 사과는 신기하리만큼 족보를 찾기 어렵다. 신화와 전설 속에도 사과를 찾을 수 없고, 한국의 나무 문화를 다룬 어느 서적에서도 사과나무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국에서 자생하는 야생 사과나무는 능금나무이다. 능금나무는 일반 사과보다 작고 신맛이 나는데 멸종위기 종으로 최근 복원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세종대왕의 <향약집성방>에서 사과와 능금이 모두 약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과와 능금은 위와 장의 활동을 정상화시키며 갈증을 해소하는데 좋다고 하며 만성위염에 사과를 하루에 세 개씩 복용하여야 한다고 쓰여있다. 대부분의 고서에 묘사된 사과와 능금은 약욕이나 식욕의 자원식물로 소개되고 있다.

정원에 사과나무는 어려운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과나무는 열매 생산을 위해 여러 세대에 걸쳐 과수원에서 길들여진 것 들이다. 해마다 크고 붉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투여하는 비료와 농약에 익숙해진 나무들이다. 그런 나무는 농약과 비료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정원의 나무를 과수원과 같은 방법으로 약을 투여해가며 관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수원처럼 일 년에 십여 차례씩 약을 뿌리게 된다면 그곳은 이미 정원이라고 할 수 없다.

사과나무는 병충해에 약하고 관리가 어렵다.

달고 맛난 과일나무에 벌레가 많이 모여드는 것은 사실이다. 잎을 갉아먹는 것도 있고 꽃의 암술과 수술까지 다 먹어버리는 것 등 종류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사과나무가 본대부터 병충해에 약하고 까다로운 나무는 아니었다. 사과뿐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도 본래부터 병충해에 약하고 까다로운 식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인류가 꾸려온 오랜 농경생활의 결과일 뿐이다. 최대의 수확을 얻기 위해 약을 뿌려 벌레를 제거해 주고 비료를 주어 쉽고 편하게 양분을 취하게 한다. 그 결과 사과나무는 땅 속 깊이 뿌리내려 양분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고 귀찮게 하는 벌레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가는 능력, 즉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지키는 능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환경으로부터 격리되어 홀로 서게 된 사과나무는 지금껏 공생을 누려왔던 생태계의 보호 없이 인간과의 관리와 통제 하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들의 작품이다. 열매를 맺는 도구가 되어 인간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본래의 자연성을 잃고 기형이 된 것뿐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식탁이 진정 풍요로워진 걸까? 풍성한 식탁으로 인해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진 것일까?


사과나무 꽃 (사진 출처 flichr)

이 사과 이야기도 사실 명확한 결과를 찾지 못하고 오리무중으로 끝나가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의 정원에서 자랄 수 없는 사과나무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옮겨 보았다. 아마도 18세기 선교사들을 통해 들어온 사과나무는 경제 부흥을 위한 재배법으로 개발되어 상품가치로서의 발전만 이뤄온 것으로 생각된다. 사과나무뿐만이 아니라 모든 과실나무는 나무로의 이야기를 쓰지 못할 만큼 변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빨간 머리 앤에서 남자아이를 원했던 마릴린의 거부로 다시 돌아가는 길 장면이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사과나무 길이었는데.. 혹시 먼 훗날 벚꽃만큼 화려한 사과나무길을 우리나라에서도 걸어볼 수 있을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은 사과 씨앗 발아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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