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하이든 고별 교향곡, 연주자가 연주 도중에 사라져버린다?

아타카_attacca 2022. 6. 20.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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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많은 연주를 경험한다고 한들, 분야에 따라 솔로나 실내악을 주로 하거나 오케스트라 중에서도 심포니, 혹은 오페라 아니면 뮤지컬이나 콘서트나 녹음 등 주로 일하는 분야에 따라 많이 접하게 되는 곡들이 생기게 된다. 오히려 전공 공부를 하는 동안 책에서 배우고 음악으로 듣던 곡을 실제로 연주하는 경험이 더 많을 수 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통 클래식이라고 해도 좋은 사람들과 양질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편이며 나이가 들어가며 전문 연주단체에 소속되지 않는다면 더욱 그리운 경험이 된다. 지금은 연주를 많이 하고 있지 못하지만 지나고 보니 대학 졸업 후 꽤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분들과 많은 공연을 한 듯하다. 그때의 경험 중에 무척 특별했던 연주였던 재미있는 교향곡이 있어 한번 소개해 보려 한다. 

 

위트있게 그려진 하이든 고별 교향곡 앨범 자켓 (사진출처 Fliickr)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 ( Haydn Symphony No. 45 'Farewell' )

 오스트리아 작곡가 하이든의 특징은 유머에 넘친 음악에 있다고 일컬어지는데 교향곡  <고별>은 유머러스하기보다는 기묘한 곡이다. 네 개의 악장 중에서 제3악장까지는 정상적으로 진행되는데, 제4악장 후반의 아다지오에 들어가면 제1오보에와 제2호른부터 연주자들이 차례차례 촛불을 끄고 퇴장한다.( 하이든 시대에는 전기가 없다. 그래서 연주자들마다 각자 촛불을 켜고 연주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연주자 두 사람만 남게 된다. 그리하여 말로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함을 남긴 채 끝나버리는 곡이다. 

 

현대에서 고별 교향곡을 조명을 끈채 연주하는 포퍼먼스까지 재연한 멋진 공연 (사진출처 Flickr)

연주자들은 왜 연주 도중에 모습을 감추는 것일까?

 하이든은 29세인 1761년부터 약 30년 동안 헝가리 귀족 에스테르하지 후작에게 고용되어 봉직하였다. 에스테르하지가에서는 하이든을 비롯하여 다른 단원들을 후하게 대했지만 신분상으로는 어디까지나 고용인이었다. 그들에 대한 규칙은 딱딱했으며 주군에게는 함부로 거역할 수 없었다. 특히 단원들이 고통스러웠던 일은 해마다 봄부터 여름에 걸쳐 에스테르하지 후작을 따라 별궁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별궁은 노이지들러 호수가 보이는 아름답고 호화로운 궁전이었지만, 하이든이 <고별>을 작곡한 1772년 당시에는 아직 짓고 있는 중이어서 단원들의 가족이 머물 공간이 없었다. 따라서 악장인 하이든 등 몇몇의 예외 말고는 단원들은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단원들의 고충은 아는지 모르는지 백작은 그 해 예정보다 2개월이나 더 머물겠다고 말했다. 단원들은 가족에게 가고 싶었으나 후작이 휴가를 보내주지 않자 불만이 가득했다. 이들의 불만을 알아챈 하이든이 마지막 악장에 현명하면서도 기발한 풍자를 가미한다. 빠르게 시작한 4악장이 갑자기 잔잔해지면서 연주자들이 한 사람씩 촛불을 끄고 퇴장하게 한 것이다. 단원들의 외로움과 고민을 에스테르하지 후작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과는 훌륭하게 성공했다. 후작은 연주를 듣고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고 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하나둘 촛불이 꺼지고 두명의 바이올린 주자만 무대에 남는다. (사진출처 Flickr)

 공연 방식에 대해 잠깐 느꼈겠지만 밝고 큰 무대에서 혼자 스르륵 일어나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은 연주자 입장에서도 무서운 일이다. 나도 내 차례가 오기까지 그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내 구두 소리가 왜 이렇게 큰 거야!!ㅠㅠ) 자료를 찾다 보니 이렇게 어두운 무대에서 조명을 끄고 나간다면 훨씬 잘 해낼 수 있었을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서도 (특히 한국!) 대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박주를 쳐야 할지 무척 난감했을 공연이다. 우리가 했던 공연에서는 다시 모든 단원이 지휘자와 무대에 입장해서 인사를 할 때서야 묘한 긴장감에서 모두가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요즘의 관객 수준과 기획력, 그리고 단원의 포퍼먼스라면 아마 간절히 휴가를 원하는 단원들과 이를 전달하고픈 하이든의 마음까지 담아 좋은 공연을 만들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과 함께 잠시 상상해 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이지만 코로나로 인한 봉쇄도 완화되고 사람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림이 느껴진다. 드디어 찾아온 휴가를 휴가답게 보내기 위해 많은 분들이 행복한 계획을 짜고 있을 요즘이다. 일상의 번아웃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안전하고 평안한 휴가를 보내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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