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의 대화법

올리브의 역사

아타카_attacca 2022. 5. 2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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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주말 이벤트는 단연코 피자였다. 주말 점심으로 피자 한판 시켜놓고 가족들과 둘러앉아 한 조각씩 나눠먹으며 이야기 나누던 그때엔 지금처럼 다양한 종류의 피자는 없었다. 슈퍼수프림 피자에는 다양한 야채와 햄, 그리고 까만 올리브가 총총 박혀 있었는데 어린 나는 배정받은 조각 속에 제발 올리브는 적게 들어있길 바라곤 했다. 지금 나이가 들어서는 딸이 몰래 한쪽 구석에 몰아놓은 것까지 모아서 먹는다. 심지어 올리브 오일은 이젠 가정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스이자 건강식이 되었고 올리브 오일로 가글(오일풀링)을 하면 치아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사랑받는 올리브는 어디에서 발전하게 되었을까?
올리브는 뒤늦게 지중해에 발을 들인 편이지만 인류가 야생종을 이용해 이 식물을 재배한 것은 5,000년도 더 전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그렇게 지중해에 당도한 올리브는 기름으로 모습을 바꿔 도시국가 아테네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고 우리에게 민주 정치와 올림픽 대회, 파르페 논 신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생명을 잃지 않는 미술 작품을 선사했다.

위대한 올리브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이 나무는 키가 최대 20미터까지 자라지만 재배 시에는 대체로 3미터 내외로 유지된다. 작고 검은 올리브 열매는 단단한 씨가 들어있는데 다 익은 열매의 기름 함량은 20퍼센트에 달하고, 전체 작물의 99퍼센트는 올리브유를 생산하는데 쓰인다. 연화 과정을 거쳐 씨가 제거된 열매는 저온에서 압착되어, 산도가 낮으면서 최고의 풍미를 자랑하는 순수 올리브유로 다시 태어난다. 이어지는 고온 압착 과정에서는 기음을 짜고 남은 찌꺼기에서 생산한 2차 기름은 올리브 포마스(olive-pomace)가 생산된다. 찌꺼기는 비누를 만드는 데 사용되고 열매에서 빼낸 씨는 열을 이용하는 공정에서 연료로 사용된다. 올리브는 이렇게 5,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중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연료가 되었다.

올리브 나무와 열매







" 올리브 나무가
나에게 얼마나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지 자네가 알게 된다면
이 나무가 지독한 놈이라는 걸 알게 될 걸세, "
-르누아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 1900년대 초

그리스의 황금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초로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체육제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체육에서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300년 후 파르테논 신전을 축조하여 건축 양식의 기준을 세웠고 그로부터 2,000년 후인 영국 조지 왕조 시대에도 사람들은 이 신전을 정확한 비율을 갖춘 건축물의 대명사로 여겼다. 20세기 아랍 국가들이 석유를 기반으로 삼아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된 것과 같이 고대 그리스가 예술과 체육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이며 강국으로 발전한 데는 올리브유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양의 기름을 옮기려면 새로운 직업과 기술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올리브를 사고팔기 위한 화폐, 수송을 위한 배, 해적으로 부터 상선을 보호하기 위한 군함, 기름을 담기 위해 암포라 같은 항아리를 만드는 도공이 등장했다. 도공들은 신화와 전설, 당시의 생활 모습 등을 그려 넣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예술을 창조했다. 척박하고 돌이 많은 그리스 땅에서는 곡식을 키우기 어려웠지만, 그리스인들은 올리브유로 벌어들인 수입을 이용해 식민지에 밀밭을 만들 수 있었다.

암파라, 그리스 로마시대의 몸통이 볼록한 항아리 형식
암포라-그리스 로마시대의 몸통이 불룩한 하아리

지중해의 기적

에드워드 하임스의 인류에 공헌한 식물 이야기(1971)에서 아테나 여신과 그녀의 선물에 얽힌 전설을 배제하며, 올리브 나무가 기원전 8세기까지 그리스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올리브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지중해 곳곳으로 수송되었다. 그리스 선박은 마실리아 죽 현재의 마르세유 항구에도 닻을 내렸고 그 배에 실렸던 올리브 나무가 르누아르가 그토록 아끼던 프로방스 올리브 숲의 시초가 된 것이다. 기원전 370년까지 이 나무가 없었던 이탈리아는 그리스인이 남겨준 선물에 힘입어 250년 만에 세계 최고의 올리브유 제조 국가로 발전했다. 15세기에 이르러 범선 위로 돛이 펄럭이고 유럽인의 대항해 시대가 펼쳐 기면서 올리브 묘목은 전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은 스페인,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 튀니지, 모로코, 일본, 남아프리카, 인도, 중국, 뉴질랜드와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올리브 나무가 재배되고 있으나, 올리브를 가장 많이 소비라는 지역이 지중해 연안 국가라는 사실은 옛날과 변함이 없다.


전 세계 현대인의 슈퍼 푸드로 자리 잡은 올리브의 역사에 대해 빌로스의 "식물, 역사를 뒤집다"라는 책을 통해 알아보았다. 식물을 통해 세계를 정복하고 그사이에 자리 잡은 전반적인 역사의 변화가 매우 흥미로운 것 같다. 앞으로 다른 식물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바꿔 놓은 일들을 찾아보며 식물과 새로운 대화를 시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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