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의 대화법

해바라기 (해바라기씨 오일)

아타카_attacca 2022. 5. 24.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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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경제와 과학이 발전하면서 더 빠르고, 더 크게 식물을 작황 하려는 노력으로 유전자 변형(GMO) 식품이 널리 퍼졌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더 저렴한데 맛은 좋고 빠르게 조리되는 식품들을 사실 아무 의심 없이 구매했다. 지금에 와서 GMO식품으로 개량된 제품의 부작용으로 치매, 심장질환 등 우려되는 질병들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금은 식품류를 구매할 때에 가격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재배되었는지(원산지), 어떻게 재배되었는지(GMO 혹은 친환경 여부), 어떻게 가공되었는지까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구매해야 우리 가정의 식탁을 지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카놀라유의 유해성에 대해 많이 이야기가 되어 요즘은 해바라기씨유의 소비량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해바라기씨 오일을 섭취하게 되었을까? 찾아보니 생각보다 아주 오래전, 역사가 깊은 이야기가 있었다.

해바라기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콜레스테롤 유지자원의 하나이다.

감춰진 보물, 해바라기 씨

우리는 해바라기를 가장 먼저 재배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 식물의 씨는 아메리카 서부에 거주하던 인디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이었다. 이들은 약 2,000~3,000년 전부터 이 식물의 씨를 갈아 가루를 내서 사용했고, 씨가 든 묵직한 해바라기 머리를 채소처럼 다뤘다. 온몸에 선명한 칠을 하고 화려한 빛깔의 직물과 도자기를 만들었던 호피족은 일찍이 해바라기 씨에서 파랑, 검정, 보라, 빨강 염료를 추출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들은 천과 바구니를 짜는 데 해바라기 잎과 줄기 섬유를 사용했고, 이 식물의 약효를 확인한 인디언 주술사들은 연고를 만들어 뱀이나 독충에 물린 상처도 해바라기를 이용해 치료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또 다른 인디언 부족인 아스텍족이 이 꽃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사실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해바라기의 머리 부분은 두 종류의 작은 꽃들로 구성되어 있다. 바깥쪽의 노란 설상화(꽃잎)와 안쪽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중심화가 바로 그것으로, 중심화는 저포화 지방을 풍부하게 함유한 씨가 된다. 길쭉한 줄기와 둥근 잎이 새 모이나 제빵 원료 등으로 사용될 때, 햇빛을 양분으로 삼은 해바라기 꽃은 기름은 생산한다. 여기서 나온 해바라기유는 마가린, 샐러드드레싱, 식용유로 변신하는가 하면 비누와 광택용 도료의 제조에 이용되기도 한다. 줄기와 잎, 남은 기름 찌꺼기는 농장의 가축을 살찌우는 데 쓰이고 섬유질이 풍부한 원료는 분쇄 과정을 거쳐 종이로 재탄생한다. 사업가 정신이 뛰어난 어느 발명가는 코르크보다 해바라기 줄기 심의 비중이 작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소재를 사용해 구명대와 구명조끼를 만들었다. 1912년,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침몰된 타이타닉호로부터 소수의 무리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해바라기 덕분이다.

천재 그리고 비극

타이타닉 호 난파 사건이 일어나기 24년 전, 평생을 우울증과 맞서 싸운 한 화가는 해바라기가 담긴 꽃병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나 지금 엄청 열심히 작업하는 중이다. 마르세유 사람들이 부야베스를 먹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 내가 해바라기를 그린다고 해서 네가 놀라진 않겠지?"라고 말했다. 고흐는 두텁게 물감을 발라 붓을 놀리는 임 페스토 화법으로 해바라기에 입체적인 질감을 부여했다. 그는 햇살이 화창한 남부로 이사해 인생의 마지막 여름 동안 자신이 아끼는 해바라기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애쓰며 우울증을 견뎌 냈다. 그러나 겨울 동안 또다시 상태가 나빠져 테오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몇 통의 편지에는 " 난 항상 내가 어딘가를 향하는 나그네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삶이 끝날 즈음엔 내 생각이 틀렸음이 밝혀지겠지. 그때가 되면 난 그림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단지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거야."라고 쓴다.






" 자닌(Goerges Jeannine)에게 작약이 있고
코스트(Ernest Quost)에게 접시꽃이 있듯,
나에겐 해바라기가 있다는 걸
너도 아마 알 테지. "



- 빈센트 반 고흐 , 1889년의 편지 중에서.


1890년 7월 27일, 결국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눈 고흐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이틀 뒤 수많은 해바라기 그림들 옆에서 숨을 거뒀다. 그로부터 한 세기 남짓한 시간이 흘러, 고흐의 <열 다섯 송이 해바라기 Vase with Fifteen Sunflowers>(1888)는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당시 미술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거의 4,000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에 팔려 그전까지 근대 미술가들의 작품이 기록한 금액을 무의미한 숫자로 바꿔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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