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19세기 예술 가곡,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아타카_attacca 2022. 8. 1.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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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타카입니다 :)
지난 시간에 이어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발전한 예술가곡 중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에 관해 이야기를 준비해 왔습니다. 슈베르트의 가곡 곳곳에서 성악과 피아노의 조화, 문학과 음악을 느낄 수 있지만, 그의 음악적 연륜이 집대성된 작품을 꼽으라면 1827년 작곡된 <겨울 나그네>만 한 작품이 없을 것입니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성악뿐만 아니라 피아노 선율의 감정선까지 함께 들으면 더욱 감동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 한번 겨울 나그네를 함께 감상해보실까요? 😀


겨울나그네의 앨범자켓 / 사진출처 flickr

겨울 나그네 Winterreise

슈베르트가 죽기 한해 전인 1827년에 그는 빌헬름 뮐러의 시에 붙인 연가곡 [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였다. 이 시기에 슈베르트는 자신이 '그 어느 세계에도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절망하여 세상으로부터 홀로 고립되어 있었다. 그와 친하게 지내던 몇몇 시인 친구들 역시 그에게 사기를 북돋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그의 건강 역시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독일의 어느 겨울길 / 사진출처 flickr

낯선 이방인

인연에게 안녕을 고한 뒤 방랑의 길을 떠난 <겨울 나그네> 속 청년은 길 위에서 온갖 경험과 맞닥뜨린다. 대부분 고통스럽고 정말적인 경험이다. 불길한 까마귀를 만나기도 하고, 따뜻한 꿈과 차가운 현실을 넘나들기도 한다. 이밖에도 도깨비불, 백발, 환영의 태양 등 죽음의 매개를 끊임없이 마주치며 정처 없는 방랑을 이어간다. 마음 둘 곳도, 편히 기댈 곳도 없는 고독한 겨울길. 청년은 마을의 끝자락에서 늙은 거리의 악사를 만난다. 꽁꽁 언 손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손풍금을 켜는 처량한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고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총 24곡으로 1번부터 12번까지, 그리고 13번부터 24번까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슈베르트가 이 작품을 작곡할 때 원작자인 뮐러의 시 겨울 나그네와 순서를 다르게 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뮐러의 원 작지에서 여섯 번째 순서였던 <우편마차>를 2부의 첫곡(13번)으로 바꾸는 등 슈베르트는 음악적 흐름에 맞게 원작의 순서를 조정했다.

사진출처 / flickr
Fremd bin ich eingezogen, Fremd zieh' ich wieder aus.
낯선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이 되어 나는 떠난다.


-<겨울나그네>의 1번 곡 <안녕 Gute nacht>의 첫 소절

첫 번째 곡 "안녕 Gute nacht" (밤 인사)

작품은 사랑하는 이에게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를 남기며 시작된다. 떠나야 함을 알고 있는 청년은 그녀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마지막으로 떠올린다. 혹여나 그녀의 단꿈을 방해하진 않을까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긴다. 하고 싶은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아 쓴 '안녕'이라는 말을 남긴 채.

Franz Schubert - Gute Nacht D911/1

다섯 번째 곡, "보리수 Der Lindenbaum"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는 청년에게 큰 위로이자 안식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달콤한 꿈을 꾸기도 했고, 수많은 사랑의 말을 보리수 가지에 새겨놓기도 했다. 보리수는 오늘도 산들산들 흔들리며 '내 곁을 와 쉬어가라'는 달콤한 말을 전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추억도 다 지난 사랑의 흔적일 뿐, 청년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일순간 모자를 날려버릴 정도의 거센 바람이 몰아치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길을 떠난다.

포르테디콰트로+기타리스트 박윤우+기타리스트 박종호 - 보리수(Der Lindenbaum)(영화 ‘겨울 나그네’) [열린 음악회/Open Concert] 20200823

스무 번째 곡 "이정표 Der Wegweiser"

청년은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피해 걷는다. 숨은 길을 찾으며 굳이 어려운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떤 어리석은 욕망이 나를 황무지로 내모는 것인가?"라며 자조적인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눈앞에 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러나 청년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다른 길로 걸어간다. 그 길은 누구도 돌아온 사람이 없는 길이다.

한 이정표가 내 앞에 섰네,
바라봐도 꼼짝 않는구나.
내가 갈 길은 하나뿐,
아무도 돌아온 적 없는 그 길이네.

-겨울나그네 <이정표>의 마지막 소절

슈베르트가 끝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던 곡이라고 한다. 돌아온 이가 없는 길, 죽음임을 알고 있지만 청년은 덤덤하게 그 길로 나아간다. 피아노 반주 역시 청년의 발걸음을 딸 묵묵하게 연주를 이어간다. 곡의 마지막 순간, 험난한 여정이 이제는 힘에 부치는 듯 아주 여리게 사라지듯 끝이 난다.

Winterreise: Der Wegweiser [German+English Lyrics]

스물네 번째 곡, "거리의 악사 Der Leiermann"

마을의 끝자락, 손풍금을 연주하는 늙은 거리의 악사가 한 명 있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얼름 위에서 비틀거리며 연주하지만 조그만 접시에는 동전 한 닢도 없다. 그저 동네의 개들만 으르렁 거리며 짖을 뿐이다. 청년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이 늙은 악사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동행할 것을 제안한다. "기이한 늙은이여, 나와 함께 가리오? 내 노래에 맞춰 당신의 손풍금을 연주해 주겠소?"

긴 연가곡의 마지막 곡이다. 피아노는 도입부부터 단순한 손풍금을 연주한다. 그 선율은 특출하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다. 성악 역시 노래라기보다 그저 내용을 읊조리는 느낌이다. 그렇게 단순한 선율과 함께 청년의 마지막 제안으로 <겨울 나그네> 여정은 마무리된다.

Schubert - Winterreise - "Der Leiermann", Hans Hotter

클래식 기타의 반주로 노래하는 거리의 악사, 리코딩도 좋고 느낌이 너무 좋아서 넣어봅니다.

Der Leiermann, Franz Schubert /Voice: Philippe Sly, Guitar: Adam Cicchillitti

*오늘의 포스팅은 도서 [들으면서 배우는 서양음악사]와 [다정한 클래식]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어려운 고비 잘 넘기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토닥토닥🙏
24곡이라 해도 한 시간 남짓한 총 연주시간이지만 내내 시종일관 우울한 곡이긴 하죠. 그리고 겨울에 잘 어울리는 곡이기도 합니다.😅 한 편의 시와 한곡의 가곡 흐름을 함께 읽어 내려갔으면 하는 저의 작은 욕심이 여러분께 시원?하고 차분?한 시간이 잠시나마 되셨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일종의 정신승리지요ㅠ)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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