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마태수난곡, 묻혀있던 바흐의 명곡을 멘델스존이 부활시키다.

아타카_attacca 2022. 6. 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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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있는 지역은 본격적인 장마를 알리듯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다. 비 오는 날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집에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런 날은 바흐! 날이 좋아도 날이 흐려도 좋은 바흐의 음악을 검색해보다 마태수난곡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가 있어 옮겨보려 한다.

사진출처 flickr

마태 수난곡

루터에 의해 번역된 [마태복음] 26,27장의 내용을 기본으로 하며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수난곡이란 [성서]에 쓰인 그리스도 수난의 이야기를 곡에 붙인 것으로 그때까지는 길어도 한 시간 정도의 곡이었다. 수난곡은 바흐 이전에도 존재했던 악곡 스타일로 1717년 아래로 성금요일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오후 예배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련된 곡을 연주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합장과 오케스트라가 2중으로 풍성한 음악적 효과를 가진다. (사진출처 flickr)

1725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예수의 수난 과정에 대한 작곡을 의뢰 받았지만 오페라 음악은 절대 안 된다는 당부를 받는다. 바로크 음악의 고유한 부분들 때문에 예수의 성스러운 부분이 훼손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런데 바흐는 이 곡을 통해 후세에 유행하게 되는 '오라토리오 수난곡'이라는 형식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오라토리오는 노래하는 중간에 아리아를 삽입하는 오페라와 같은 형식 이러서 종래의 수난곡에 비해서 길었다. [마태수난곡]은 세 시간이 넘는 대곡이었던 것이다. 예상 밖으로 긴 곡이라는 점과 익숙하지 않은 음악 형식에 많은 사람들은 당황했고 그리하여 1750년에 바흐가 사망하자 [마태수난곡]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암흑 속에 묻히게 되었다.

최대한 젊어보이는 멘델스존 (사진출처 flickr)

멘델스존은 어떻게 바흐의 명곡을 찾아내서 부활시켰을까?

여기에는 그의 할머니의 역할이 컸다. 멘델스존이 열네 살 생일을 맞자 할머니는 [마태수난곡] 악보 필사본을 선물했다. 잊히고 사라져 가는 명곡이라고는 하지만 악보 필사본은 전해져 내려왔던 것이다. 결국 성장한 멘델스존은 친구인 오페라 가수 데브리엔트와 베를린 음악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스승 체르타의 협력을 얻어, 1829년 베를린 음악협회 대홀에서 [마태수난곡]을 부활 연주했다. 지휘를 한 것은 막 스무 살이 된 멘델스존이었다.

사진출처 flickr

전곡 연주 시간이 3시간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대작이니 만큼 멘델스존은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거의 2년 동안 리허설에 매달려야 했다. 1829년 3월 11일 베를린, 20세의 청년 멘델스존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마태수난곡]를 무대에 올렸다. 바흐의 서거 후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은 채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해묵은 악보가 다시금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당대 최고의 철학자 헤겔은 이 음악회를 보고 나서 이렇게 기록했다.

바흐는 위대하고 진실한 신교도였으며, 강인하고 박신한 천재였다.
최근에서야 비로소 그의 음악을 완전한 형태로 감상할 있게 되었다.

이 부할 연주로 [마태 수난곡]과 바흐의 진가가 재평가됨으로써 [마태수난곡]은 클래식의 최고봉,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멘델스존 자신도 위대한 작곡가이자 지휘자로서 활약했지만 막상막하의 바흐를 부활시킨 공적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자료 출처. 명곡에 얽힌 치명적인 비밀, 클래식 미스터리
클래식 명곡 명연주 (음악평론가 최은규)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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